난 시위 미화 영화가 싫다.
물론 그시대를 살아보지 않아 함부로 말할순 없지만
시대속의 사건에 반해 시위를 하고 소리를 지르고 해도
세상은 바뀌지 않아.
바뀌고 있는 와중에 일어나는 자극적인 이벤트라고 생각해.
5.18이나 부마항쟁 모두.
그 당시 시위를 주도적으로 했던 대학생들의 지금 추하게 늙은 모습을 봐..
타키투스의 말처럼 부패할 수록 법이 많아지고 있어
민주를 외쳤던 그들은 더 틈새 없이 조이는 방법을 알고 있고
이젠 저들이 소리내어 외쳤던 부정선거를 저들 스스로 자행하고 있어.
그에 따라 자연스러운 올림픽 공원 시위가 발생하고
대학생들도 일어서고 있어. 추한 저들의 찬란했던 모습처럼.
물론 그때도 찬란했다고 보이진 않지만,
적어도 저들이 만든 근대역사서에 기록된 모습만으로는.
난 소양이 짧아 이게 내 생각의 전부지만
나보다 더 많은 팩트와 사실들을 학습한 너는 어떻게 생각하니?
네 생각에서 가장 날카로운 부분은 “훗날 권력자가 된 운동가의 추함이 과거의 대의를 소급해 무효화하는가”, 그리고 “시위는 변화를 만드는 원인인가, 이미 진행 중인 변화의 표면인가”라는 두 질문이라고 봐. 현재의 올림픽공원 시위와 부정선거 주장까지는 사실관계를 확인한 뒤, 동의하는 부분과 반론할 부분을 나눠 말해볼게.
네 생각이 “소양이 짧아서 나온 단순한 생각”이라고 보지는 않아. 오히려 서로 다른 네 문제를 한꺼번에 붙잡고 있어.
- 영화가 시위와 참여자를 성인처럼 미화하는 문제
- 시위가 실제로 역사를 바꾸는가라는 인과관계
- 민주화를 외치던 사람이 권력을 잡은 뒤 타락하는 문제
- 지금의 선거가 실제로 조작되었는가라는 사실판단
내 생각은 이래. 시위를 신성하게 보는 것도 잘못이지만,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자극적 이벤트로만 보는 것도 절반만 맞다.
시위는 대개 이미 진행되고 있던 변화를 혼자 만들어내지는 못해. 경제 위기, 정권 내부의 균열, 국제환경, 세대교체 같은 조건이 먼저 쌓이고, 시위는 그것을 한꺼번에 가시화한다. 숨죽이던 사람들이 “나만 불만인 게 아니구나”라고 알게 하고, 권력 내부에서 강경 진압과 타협을 놓고 갈라지게 하며, 정권이 치러야 할 통치비용을 높인다. 그러므로 시위는 변화의 유일한 원인도 아니고 단순한 불꽃놀이도 아니다. 이미 쌓인 가연물에 붙는 불이면서, 그 불 때문에 균열의 방향이 달라지는 사건이다.
부마항쟁이 정확히 그런 경우다. 유신체제는 경제·사회적 모순과 권력 내부 갈등으로 이미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부산·마산의 항쟁과 그 진압 방식을 둘러싼 권력 내부 충돌이 격화된 뒤 열흘 만에 10·26이 일어났다. 그래서 역사학에서는 부마항쟁을 유신 붕괴의 단독 원인이 아니라 붕괴를 결정적으로 촉진한 사건으로 평가한다. 국사편찬위원회 설명
5·18은 당장 정권을 바꾸지 못했다. 오히려 신군부가 권력을 장악했으니 단기적으로는 패배한 항쟁이었다. 하지만 진압의 기억이 제5공화국의 정당성을 지속적으로 침식했고, 1987년 항쟁과 이후의 진상규명·사법처리로 이어졌다. 이것도 단순히 어느 정파가 나중에 쓴 역사책만의 주장은 아니다. 당시 자료와 증언, 군 기록, 국회 청문회, 그리고 전두환·노태우 등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겹쳐 있다. 5·18 관련 대법원 판결 자료
다만 나는 네가 영화에 느끼는 거부감에는 상당히 공감해. 많은 민주화 영화가 복잡한 군중을 순결한 공동체로, 참여자를 도덕적으로 완성된 인간으로, 희생을 숭고한 결말로 정리한다. 현실의 시위에는 허영, 군중심리, 잘못된 판단, 폭력성, 우연, 내부 권력투쟁도 섞여 있다. 그것을 지워버리면 역사가 아니라 시민종교에 가까워진다. 국가폭력을 비판하는 것과 시위대를 성인으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그 당시 운동가 중 일부가 지금 권력의 위선과 억압을 보여준다는 비판도 타당할 수 있다. 사람은 스무 살 때의 용기로 평생의 도덕성을 보증받지 않는다. 과거에 독재에 맞선 행동이 진실이었다는 것과, 그 사람이 훗날 위선적 권력자가 되었다는 것은 동시에 참일 수 있다. 후자의 타락이 전자의 행위를 자동으로 거짓으로 만들지는 않지만, 과거의 훈장을 현재 권력의 면허증으로 사용하게 해서도 안 된다. 오히려 여기서 얻어야 할 교훈은 “누가 민주화 세력인가”보다 “지금 누가 권력을 행사하며 어떤 견제를 받고 있는가”를 보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타키투스 인용도 정확한 출전이 있다. 다만 그는 단순히 법률의 개수를 센 것이 아니라, 특정인을 겨냥한 법과 파벌적 입법, 밀고와 선택적 집행이 늘어나는 상태를 비판했다. 《연대기》 3권 27장 그래서 오늘날에도 법이 많다는 사실 자체보다 다음을 봐야 한다.
- 일반적인 규칙인가, 특정인과 특정 세력을 겨냥한 것인가
- 과거 행위를 뒤늦게 처벌하는 소급적 성격이 있는가
- 같은 행위에 진영별로 다른 법 집행이 이루어지는가
- 반대자를 수사·검열하는 데 법이 동원되는가
- 권력자 자신도 그 법의 적용을 받는가
현재 올림픽공원 시위에 대해서는 더욱 엄격하게 사실을 구분해야 한다. 6·3 지방선거에서 여러 투표소의 투표용지가 실제로 부족했고 투표가 중단·지연된 것은 확인된 중대한 선거관리 실패다. 선관위도 사과했고 국정조사와 합동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단순 실수라고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며, 시민과 대학생이 항의하고 자료 공개와 책임자 처벌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투표용지 부족 원인 분석, 국정조사·합동수사 상황
그러나 선거관리 실패가 확인되었다는 사실과, 집권세력이 의도적으로 결과를 조작했다는 결론은 다른 명제다. 후자에는 지시·공모·투표수 변조·결과에 미친 영향 같은 증거가 필요하다. 2026년 7월 23일 현재 공개적으로 확정된 조사결과만으로 “저들이 부정선거를 자행했다”고 단정하기는 이르다. 반대로 증거를 요구한다고 해서 선관위를 옹호하는 것도 아니다. 가장 강한 태도는 “음모론이니 입 닫으라”도, “사고가 났으니 조작이 틀림없다”도 아니라 투표록·CCTV·용지 인쇄와 배부 기록·잔여 용지·투표 포기자 규모를 공개하고 독립적으로 검증하라는 요구다.
그래서 내 입장은 한 문장으로 이렇다.
과거의 시위도 현재의 시위도 숭배하거나 조롱하지 말고, 주장·증거·수단을 같은 기준으로 심판해야 한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였다고 그 주장이 자동으로 참이 되는 것도 아니고, 늙은 운동가들이 추해졌다고 그들이 젊었을 때 맞섰던 국가폭력이 정당해지는 것도 아니다. 네가 경계하는 것은 본래 민주주의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자신의 영구적인 도덕적 신분으로 독점하는 사람들에 가까워 보여. 그 경계는 필요하다. 다만 그들을 비판하려면, 그들이 과거에 사용했던 과장과 집단적 확신을 우리도 반복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